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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은 한.일 청소년 문화교류 후기 - 김미성

betty11 | 18.02.07 | 조회 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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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청소년 문화교류 후기 - 김미성  

                                                                                                                   

 학교 3교시는 10 20분에 끝나는데 서류심사 결과는 10시에 나왔다. 3교시 종료의 종이 울리자 마자 핸트폰을 켜서 미지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을 했다. 합격을 해 최종면접까지 왔을 때 너무 떨렸었다. 나는 나 말고 다른 언니랑 둘이서만 면접을 봤는데 그 언니가 너무 잘해서 떨어질 것 같았다. 학교 끝나고 핸드폰을 켜 봤는데 최종합격이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집에 뛰어가서 컴퓨터를 키자마자 미지센터에 들어가서 내 이름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똑같은 그 자리에 앉아서 이젠 후기를 올리고 있다.

 겨울방학이 시작될 때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일 청소년문화교류는 4 5일의 본 프로그램 말고도 각각 6시간 정도의 사전모임이 3번 있었다.

 

 지루할 것만 같던 6시간 정도의 첫 번째 사전모임! 진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너무 긴장해서 인지 떨려서 인지 같이 가는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첫 번째로는 일본에서 일본문화를 알려주시기 위해 선생님 한 분이 오셨다.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문화와 우리가 가는 오사카의 사투리도 알려주셨다. 그 다음엔 서로 일본에 가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 가장 사고 싶은 것, 가장 가고 싶은 곳에 대해 발표를 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그 전에는 서로 잘 안 쓰는 손(오른손잡이면 왼손으로 왼손잡이면 오른손으로)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돌아가면서 부분적으로 그렸다. 진짜 재미있었고 서로에 대한 어색함도 사라지며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그 후에도 선생님들께서 서로에 대한 어색함을 풀어주시기 위해 여러 게임을 했는데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게임은 등에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이나 캐릭터 이름을 붙이고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등에 붙은 스티커에 대해 질문하는 게임이었다. , 질문에 답해주는 사람은 O 아니면 X로만 답해줄 수 있었다. 이렇게 첫 번째 사전모임은 서로에 대한 어색함을 없앴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통신사에 관련된 연구를 하시며 책도 내신 선생님과 함께 우리가 일본 오사카 교토를 가는 목적인 통신사의 발자취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 우리나라의 단군신화, 세종대왕, 이성계처럼 일본의 탄생설화와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위인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그 다음엔 친구들과 만날 때를 준비하며 3개의 팀으로 나눴다. 첫 번째 팀은 놀이팀이었다. 일본 친구들에게 우리나라 전통놀이와 요즘 학생들이 많이 하는 놀이를 소개하며 같이 체험해 보는 팀이었다. 두 번째 팀은 음식팀이었다. 음식팀은 인원이 많아 다시 3개의 조로 나뉘었다. 첫 번째 조는 과자조였다. 원래는 그냥 과자만 주려고 했지만 오늘 수업을 들은걸 토대로 과자를 함께 먹으며 일본 위인들을 소개하는 걸로 바꿨다. 두 번째 팀은 매운맛 챌린지 조였다. 여러 컵라면을 사가서 매운맛의 강도대로 끓여놓고 시식을 해보는 팀이었다. 마지막으로는 김밥 싸기 조였다. 김밥을 각자가 싸서 먹는 팀이었다. 세 번째 팀은 양국 문화팀이었다. 양국의 애니메이션 특징을 발표하는 팀도 있었고 우리나라의 K-pop과 힙합을 발표하는 팀도 있었다. 우리는 일본 친구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듯이 영상편지를 보냈다. 찍는 도중 NG가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다.

 

 세 번째 사전모임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였다. 두 번째 모임에서 통신사에 관해 알려주셨던 선생님께서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딱 열 개의 유물을 소개해주셨다. 그 후 우리는 마지막 점검을 하며 내일모레에 있을 캠프를 준비했다.

 

 드디어 오늘은 일본을 가는 날이었다. 나는 인천공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아서인지(다른 사람들에 비하면!!!)새벽에 나오진 않았다. 우리가 가는 날인 18일에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이 처음으로 여는 날이어서 그런지 예정시간보다 20분을 더 일찍 만났다. 그렇게 3번의 사전모임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고 우린 거기서 가이드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그 후 아무 탈없이 무사히 일본으로 도착했다. 가이드 선생님의 성이 우 씨 였다. 일본에서는 친근한 사람들끼리 이름 뒤에 짱이라는 호칭을 붙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가이드 선생님께서는 우리보고 우짱이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오미하치만으로 장소를 옮겼다. 버스를 차고 일본의 국보인 히코네성의 천수각에 갔다. 외관으로는 딱히 특별한 건 안 보이고 그냥 딱 일본 성 같았다. 하지만 1607년 경에 완성해 아직 까지 보존이 잘 돼있다는 말에 입이 쩍 벌어졌다. 내부에 들어가보면 입이 더 벌어진다. 우리나라 평균 계단 높이를 두 개는 붙여 놓은듯한 가파른 계단들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올 때가 발을 헛 디딜까봐 더 무서웠던 것 같다. 세모나게 생긴 구멍은 적군에게 총을 쏘기 위해서 비스듬히 생긴 창문은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어렵사리 계단에서 내려와 밖을 볼 땐 감탄 밖에 안 나왔다. 비와호라는 호수였는데 진짜 그냥 진짜 넓었다. 저 끝에선 수평선이 보이기 까지 했다. 비와호의 크기는 서울시 보다도 큰 크기라니얼마나 큰 크기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 후 숙소로 돌아와 짐을 푼 후에는 유카타를 입고 공동 목욕탕 같은데 물은 온천인 곳에 들어갔다. 내가 원하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늘의 피로는 말끔히 없애준 것 같다.

 

 둘째 날은 또 숙소를 옮겨야 해서 부랴부랴 아침에 짐을 싸고 금각사로 향했다. 어디에선가 금각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절의 겉면을 다 금으로 칠했다고.. 나는 그게 진짜 일 줄은 몰랐다. 그냥 진짜 예뻐서 금각사라고 부르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진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금이 절을 뒤덮고 있었다. 진짜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금각사에게도 아픈 과거는 있었다. 바로 한 스님이 금각사에 불을 지른 것 이다. 도대체 왜? 이러겠지만 스님의 이유는 간단했다. 금각사가 너무 예뻐서 질투가 나서 불을 질렀다고 한다. 아마 지금까지 몇 백년이 지난 문화재를 보존해 왔는데 한 순간에 아름다웠던 금각사가 불에 탔다는거에 망연자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꾸준히 돈을 모아서 금각사를 다시 복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각사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바로 숭례문이 타버린 것이다. 그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희망이 없는 것 처럼 망연자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이미 그 일을 겪고 그 아픔을 알기 때문인지 숭례문 복원 모금운동에 가장 먼저 솔선수범한 나라였다.

 

 그 이후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벽돌색의 대학교, 도시샤 대학에 갔다. 왜 도시샤 대학에 갔냐면 윤동주 시인과 정지용의 시비를 보기 위해서 였다. 윤동주 시비 앞에서 약 1분간 묵념을 했다. 당시 창씨개명을 해야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윤동주는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 유학길로 뛰어들었다. 동료들은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는데 자신은 적군의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에 생각을 하며 쓴 <참회록>, <서시>, <쉽게 쓰여진 시> 그리고 그 이외에도 직접 돕지는 못해도 시로 자신의 마음을 풀어나가며 시를 썼던 윤동주. 그의 시비 앞에서 묵념을 하며 그동안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해주신 독립운동가들의 은혜를 너무 잊고 살았던 게 아닌가 고민을 했던 시간이었다.

 

 사전모임에서 강연을 해주셨던 선생님께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색깔은 초록색, 일본을 대표하는 색깔은 주황색이라고 하셨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색깔은 그 나라의 궁궐에서 쓰는 색 중에 다른 나라에서는 잘 안 쓰는 색이라고 하셨다. 일본에서 관광을 하면서 나는 일본궁궐에서 주황색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청수사에 도착하면서 모든 궁금증은 풀렸다. 맑은 물이라는 뜻이라고 하지만 궁궐의 색깔들은 눈이 부실 정도의 살짝 형광 빛이 도는 진한 주황색이었다.

 

 청수사를 올라가다 보면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가 많았는데 선생님께서 청수사를 한 번 돌아보고 자유시간을 주신다고 하셔서 꾹 참고 올라갔다. 사원 안에는 지혜, 사랑, 건강을 상징하는 물줄기 세 개가 있었다. 나는 그냥 바로 기념품 가게로 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쉬었다.

 

 오늘의 점심은 일본 라멘 이었다. 빨간 국물을 보고 토마토, 고춧가루, 고추장 중에 하나인데 케찹은 아니니 나머지 두 개가 다 들어갔을 거라며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매운걸 잘 못 먹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매웠다. 하지만 깍두기를 보고 너무나도 반가워서 바로 입에 넣었는데 그냥 진짜 무 맛만 났다. 깍두기가 아니라 그냥 무만 저려 놓은 것 같았다.

 

 깍두기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내진 못하고 귀무덤으로 갔다. 귀무던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죽인 사람 수를 확인하기 위해 처음엔 귀, 나중엔 코를 묻었던 무덤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이를 자랑하듯이 만들어 놓은것에 화가 났다. 무성한 잡초와 그 위에는 무서운 불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불교의 힘으로 우리나라를 눌러버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나는 아무도 관리를 해주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의 코와 귀에 묻어져 있는 무덤인데 이 부분은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고 관리를 해줬으면 한다.

 

 우리는 교토에 있는 니시혼간지에 갔다. 원래는 하나의 사원이었던 혼간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동과 서로 분리되었다. 동쪽은 히가시혼간지, 원래 있던 부분은 니시혼간지기 부르게 되었다. 이곳은 11번이나 조선통신사의 숙소가 되었다고 한다.

 

 셋째 날에는 동대사에 갔다. 우짱께서 사슴공원이 있다고 하셨다. 일본 사람들은 사슴을 신성시 여겨, 함부로 죽였다가는 똑같이 사형을 당한다고 한다. 동대사에 가는 길에는 사슴이 자유롭게 풀어져 있었다. 나는 사슴을 무서워 하진 않지만 그냥 돌진해서 오는게 무서웠다. 가까스로 피해 다니며 올라갔다. 언니들은 사슴과자를 사서 사슴들에게 나누어 줬다. 아니, 아예 빼앗긴 경우도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서 동대사를 봤더니 왜인지 모를 뿌듯함이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다른 나라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든 문화재라…. 뿌듯했다. 동대사 내부에는 엄청나게 큰 불상이 있었다. 약 성인 15명이 부처님 손바닥 위에 올라갈 수 있다니..상상이 안간다.

 

 그 다음으로는 오사카 성에 갔다. 아까 지나갈 때 민트색 지붕이 높게 올라가 있어서 뭐지 했는데 그게 오사카 성이었다니…… 나는 엘리베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단을 이용해 올라갔다. 우리나라는 우측통행인 방면 일본은 좌측통행이어서 올라가고 내려갈 때 헷갈려서 부딪힐 뻔 했다. 맨 꼭대기 층인 8층에 올라가니 오사카 시내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웠던 오사카 성을 나와 이번엔 우메다 스카이 빌딩 공중정원 전망대에 갔다. ‘희망의 벽은 녹색 풀들과 여러 색을 가진 꽃들을 모아 한 건축가가 만든 벽이었다. 희망의 벽을 지나 공중정원으로 올라가면 오사카의 경치가 한눈에 다 담겼다. 여기서 보는 일몰도 예쁘다고 해서 우린 마침 시간이 다 되어서 올라가서 일몰을 봤는데 제주도 성산일출봉과 버금가는 예쁜 일몰이었던 것 같다. 일몰을 보고 구경을 하다가 빨간색의 하트 모양 자물쇠가 있었다. 남산타워에 올라가서 매달고 싶었지만 오늘 여기서 여러 사랑과 소망이 담긴 자물쇠를 보고 대리만족을 한다J

 

 대망의 가장 기다리고 기다렸던 일본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 왔다. 서로에 대한 약간의 긴장감(?)을 풀기 위해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다. 그 후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준비한 조들이 차례대로 발표하면서 우리는 그 틈틈히 기모노를 입었다. 정말 입고 나서 하는 말이 일본의 코르셋이라고 한다. 일자 치마여서 인지 보폭이 짧고 신발도 약간 둥글었다. 걷기도 힘들뿐더러 넘어질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는 마지막에 같이 사진을 찍어 서로의 아이디를 공유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각자 자유여행시간에도 조를 나눠서 다녔다. 나는 규콰츠를 먹고 돈키호테에 갔다가 타코야끼를 먹고 여유롭게 쉬었다. 여러 사진도 찍고 글리코상 자세를 따라 해보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돌아다녔다.

 

 한국, 지독한 현실로 돌아가기 하루 전이었다. 각자 소감을 말하는데 울컥하기도 하고 벌써 마지막 밤이라는게 안 믿겨졌던 것 같다.

 

 마지막날인 오늘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비행기가 오후에 좋은 시간에 있어서 우리는 더 놀다가 갈 수 있었다. 아침은 조식, 점심은 직접 초밥을 만들어 먹어보는 곳이었다. 옷도 갖춰 입고 머리띠까지 하고 초밥을 조물조물 거리면서 만들었는데 진짜 장인이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진짜 간사이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일정. 공항 근처에 있는 쇼핑몰 구경하기. 나는 화장품 가게도 보고 면세 가게(?) 도 가보고 문구점과 일본판 다이소 등 마지막 일정을 최대한 힘차게 즐겼다.

 

 

 

   진짜 다들 너무 수고 많으셨고 다들 다툼 없이처음 사전모임 때 공항에서 웃으며 헤어지기를 원했는데 진짜 현실로 돼서 너무 기쁘고 아직 언니, 오빠, 친구, 그리고 선생님들과 만날 날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히 여기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4 5일과 사전모임 동안 다들 수고 많으셨고 미지센터에서 다른 프로그램을 듣다가 만나면 진짜 반가울 것 같네요. 멀리서부터 올라오신 분들도 수고 많으셨고 아마 이 캠프와 함께 같이 갔던 사람들 모두 잊지 못할 거에요! 감사했고 사후 모임에서 만나요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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