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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청소년문화교류> 후기 - 이주영

쮸덕 | 18.02.03 | 조회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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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청소년 문화교류 후기

                                                                                                                                                                    이주영

최종 합격자 발표 날, 학교 쉬는 시간만을 기다리며 시계 초침소리에 침을 꼴깍꼴깍 삼키던 내가 떠오른다. 쉬는 시간 종이 치기 무섭게 미지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갔고,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곤 환호성을 질렀다. 신이 나서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폴짝거렸다. 아직도 그 때의 기분이 생생하다. 사실 면접 보고 나서 약간 체념하고 있었는데,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사전에 세 번의 모임을 가질 때마다 모임 며칠 전부터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막상 모이는 날이 되니까, 괜히 떨렸다. 친해지고 싶은데,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낯을 많이 가려서 엄청 어색한 투로 말했던 것 같다.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내 손이 덜덜 떨렸던 게 생각난다. 그래도 세 번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는지,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되고, 그만큼 친해졌다.

탐방 당일 날 늦잠을 잔건 아니었는데, 공항 지하철 시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서 혼자 늦어버렸다. 나보다 훨씬 먼 곳에서 오신 분들도 계셨는데 그나마 가까이서 온 내가 늦다니. 부끄러웠고, 시작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꿴건가 싶었다. 선생님께서도 시간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터라 질책 받을 각오를 하고 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도착했는데 질책이 아닌 미소로 반겨주셨다. 늦지 않았으니 너무 성급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같이 가는 사람 모두 밝게 인사해 주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가 꽤 심하게 흔들렸다. 기내식은 먹어야겠는데, 너무 어지러워서 차마 입에 댈 수 없었다. 정신도 오락가락해서 내릴 때는 거의 영혼이 반쯤 빠져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로 이동하면서 계속 바깥 풍경을 봤는데, 한적한 농촌 같았다.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달랐다. 첫 일정으로 히코네 성에 도착했다. 갑자기 비가 내려서 날씨가 우중충해 졌지만 일본의 국보라니 기대 되었다. 천수각은 생각보다는 아담했고 여행 책자에서 볼법한 비주얼이었다. 깔끔하면서도 단정한 인상이었다. 천수각안으로 들어갔을 때 올라가기 힘들어 보이는 계단이 있길래, 설마 저기로 올라가지는 않겠지 했는데 정말 올라갔다. 계단이 무척 가파라서 거의 기다시피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다. 적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든 것 같지만 아군들도 분명 힘들었을 것 같다. 또 내부에서 외부로 총을 쏠 수 있게 자그마한 구멍을 내어놓은 것이 한국의 수원화성을 연상케 했다. 천수각 바깥으로는 비와호가 보였는데 안개에 젖어 희읍스름하게 보였지만 바다라고 해도 믿을 만큼 드넓었다. 수평선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렇게 느낀 것 같다. 다시 버스로 가는데 그 길이 운치 있었다. 흐릿한 하늘과 예스러운 집들, 해자에 있는 고니들, 조깅하는 야구단원들. 걷는데 한가롭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선인가도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저물어 있었다. 예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조선통신사 만 걸을 수 있었다는 길이라고 하는데, 별 달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국가 최고 권력자만 걸을 수 있었던 길을 조선통신사에게도 허락해 줄 정도면 얼마나 대우를 잘 해준 것일까. 길 양쪽의 주택에 실제로 주민들이 살고 있어서 조용히 해야 했는데 이 점에서 북촌과 비슷한 것 같았다.

일본에 와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봤다. 거의 1인 1자전거일 정도로 대부분 자전거를 탄다. 서로를 껴안고 자전거를 타는 커플도 있었다. 나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싶은데 사는 곳 주변에 마땅히 탈 곳이 없어서 항상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낭만적으로 보였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온천에 갈 준비를 했다. 유카타를 입고 갔는데 내가 생각한 온천과는 달랐지만 피로가 가시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피곤해서 푹 잘 줄 알았는데, 온 밤을 뒤척였다.

이튿날에는 조금 일찍 일어나 준비했다. 숙소를 또 옮겨야 해서, 정신없이 짐을 싸고 금각사에 갔다. 금각사도 우리나라의 숭례문처럼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정신병을 앓고 있던 한 스님이 금각사에 방화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불을 지른 이유가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질투가 났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참 어이가 없었다. 복원은 금방 했지만, 문화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충격이 컸을 것이다.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지만 ‘금각사가 얼마나 아름다우면?’이라는 의구심 또한 생겼다. 금각사를 둘러싸고 있는 금들은 가짜처럼 보일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아름다웠지만, 눈부시게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어서 소박한 느낌의 은각사도 가보고 싶었다.

일본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그들이 문화재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문화재를 중요시하지만, 일본은 특히 각별한 느낌이다. 문화재가 많은 교토에는 모든 건물이 10층 이하로 지어지도록 정했다는 것과 2006년 숭례문이 불타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숭례문 복원 모금운동을 제일 먼저 시작한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 솔직히,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배워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문화재를 막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하긴 하다.

윤동주 시인의 시비와 정지용의 시비가 있는 도시샤 대학교를 방문했다. 분주한 대학생들이 보였고, 붉은색 벽돌의 예쁜 대학교 건물이 눈에 띄었다. 시비 앞에는 여러 소중한 물품들과 꽃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시비 앞에서 잠시 묵념했다. 직접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시로 자신의 안타까움과 갈등을 표현한 윤동주 시인께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다음 청수사에 갔다. 물이 맑다고 청수사 인데, 탑이 정말 쨍한 주황색이어서 놀랐다. 가이드 선생님께서 일본을 대표하는 색깔이 주황색이라고 하셔서 의아해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정말이었다. 대표색이 흰색이나 붉은색 일거라 예상했는데 뜻밖이었다. 청수사에 오미쿠지라는 점괘 운세 뽑기가 있어서, 100엔을 내고 뽑았지만 미길이 나왔다. 세 줄기로 떨어지는 오토와노타키 샘물이란 것도 있었다. 물 한줄기 마다 지혜, 사랑, 건강을 의미한다. 세 가지다 필요하지만 섞어서 마시면 그만큼 효능이 떨어진다고 해서 지혜를 택했다. 약간 미심쩍긴 했지만 재미로 마셨다. 산협에 우뚝 서있는 나무들이 빼빼로 같이 곧고 얇아서 신기했다. 절 아래쪽에 둘러볼만한 상점들이 많아서 요지야 가게에 가서 유자비누를 사고 고양이 인덱스도 구매했다.

라멘을 먹은 뒤 교과서에서만 보던 귀 무덤을 방문했다. 이름은 귀 무덤이지만 코가 더 많이 묻혀있다고 하는데, 무자비하게 조선인들의 코와 귀를 베어갔을 일본군들을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항상 사진으로만 보아서 규모가 짐작이 안 갔는데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훨씬 컸다. 얼마나 많이 묻혀있으면 이렇게 거대할지, 참 안타깝다. 귀 무덤 근처에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마치 자기의 업적을 자랑하는 것 같아서 약간 화가 났다. 짧게 묵념을 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려는데,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금은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귀 무덤,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헌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니시혼간지는 우리나라 절에 비하면 규모가 매우 큰 편이었다. 100년도 넘은 것 같은 나무 한 그루와 아름다운 양식의 등 같은 것이 있었다. 등이 조금 특이하게 생겼는데 백제의 양식도 섞인 듯 했다. 전설의 사자상이 그려진 문도 있었는데 나전 칠기처럼 자개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밤에는 유스 호스텔에서 야쯔바시(삼각형 모양인데 속에 앙꼬가 있는 교토 과자)만들기 체험도 하고 다 같이 모여 카드게임과 마피아게임을 늦은 시간 까지 했다. 재잘대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튿날 밤이 갔다.

셋째 날,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동대사였다. 사슴 공원이 있다고 해서 무척이나 설렜다. 일본은 사슴을 신성시해서,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고 한다. 가보니 울타리에 사슴이 갇혀있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과자를 사서 사슴들에게 먹이다가 큰일 날 뻔 했었다. 한 사슴이 과자를 독차지해서 다른 사슴에게도 주려고 과자를 숨기고 몰래 다가가려고 했는데, 이 사슴이 집요하게 나를 따라와서 내 옷을 물었다. 겁이 난 나는 뒷걸음질 치다가 과자를 떨어뜨렸고 넘어질 뻔했다. 그 일로 사슴이 약간 무서워지긴 했지만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과포동포동한 흰색 엉덩이를 잊을 수 없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동대사를 보니 괜히 뿌듯해졌다. 건물은 웅장하면서도 기품이 흘렀다. 지붕이 조금 특이하게 생겨서 봤더니, 사무라이의 투구 모양을 본 뜬 것이라고 한다. 안쪽에는 대불상이 있었다. 전에는 이 불상의 손에만 성인 16명이 서있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고 한다. 여러 수난으로 인해 불상의 머리가 두세 번 떨어져서 머리는 진하고 몸통은 색이 바래있었다. 불상 뒷부분 까지 세밀한 장식이 있어 ‘역시 일본은 디테일에 강하구나!’ 싶었다.

점심식사 후 치쿠린지 김한중의 묘와 마쓰시마 공원의 조선통신사 기념비를 보고 왔다. 한 때 일본으로의 긴 여정을 거치며 문화를 전해주고, 받아온 조선통신사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일본인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글을 써주고, 화려한 만찬을 대접받는 모습들. 아직도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한국과 일본. 양국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며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김한중의 묘에 갔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소동으로 타국에 와,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이리도 낯선 땅에서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김한중. 현대에는 병에 걸리면 금방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치료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먼 길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김한중의 부모님의 심정도 참담했을 것 같다.

가장 가고 싶었던 오사카성을 가게 되었다. 대부분의 성에서 볼 수 있었던 거대한 해자가 있었고, 어떻게 운반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인 거석도 있었다. 오사카 성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천수각은 외관이 참 아름다웠다. 금장식들과 톤다운 된 터키색 지붕의 조화가 경탄을 자아냈다. 어쩜 이렇게 단정하면서도 세련되게 만들었는지 벚꽃이 한창 만개하는 시즌이 되면 더 아름다울 것 같다.

우메다 스카이 빌딩 공중정원 전망대에 왔을 때 눈에 띈 건 ‘희망의 벽’이라는 건축물이었다. 녹색 풀들과 예쁜 색감의 꽃들이 둘러진 거대한 벽이었는데, 알고 보니 좋아하는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었다. 전망대는 사진 찍기에도 좋고, 그냥 걷기만 해도 좋았다. 동그랗게 되어있어서 360도로 구경할 수 있었고, 오사카의 경치가 한 눈에 다 보였다. 탁 트여있어서 속이 시원했고 해가 질 때쯤 다시 올라갔는데 구름 사이로 찬란한 햇빛이 펼쳐져서 셔터를 끊임없이 눌렀다. 비록 보지 못했지만 야경도 멋있을 듯하다.

두 밤이나 잠을 제대로 못자 피곤했던 나는 숙소에 오자마자 그대로 뻗었고, 드디어 일본 친구들을 만나는 4일째의 아침이 밝아왔다.

오사카 국제 교류센터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처음에는 간단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고 ‘세계가 100인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처음에는 일본 친구들이 화장도 거의 하지 않고 순박해 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한국 학생들과 비슷한 스타일로 꾸며서 신기했다. 옷도 다들 개성 있게 입고 왔다. 엄청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다들 리액션도 잘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서 서로 통하는 부분도 있었고 한국 아이돌을 좋아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도 공유하고, 여러 활동을 함께하며 신나게 웃을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학수고대하던 덴덴타운에서의 일정은 생각보다 아쉬웠다. 계획상으로는 돈키호테, 애니메이트, 타이토스테이션, 무지, 타케루 규카츠를 모두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눈에 띈 타이토 스테이션을 먼저 갔다. 오락실이 5층이나 되다니,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게임을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유튜브로만 보던 오락실 고수들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 다음 애니메이트를 갔는데, 건물 안에 들어오자마자 같이 갔던 조원들의 눈빛이 확 바뀌는 게 재미있었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웃겼다. 애니메이트를 나올 때는 ‘아직 더 볼게 많은데...’하는 표정으로 아쉬워하는 게 역력했다. 그리고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타케루 규카츠가 블로그에는 30분 웨이팅이라고 되어있어서 안심하고 갔는데 무려 2시간을 기다렸다. 주어진 4시간 중에 절반인 2시간이나 허비해버린 것이다.. 결국 우리 팀만 늦어서 정신없이 쇼핑하고 글리코상 간판에서 급히 사진을 찍고 뛰어갔다. 돈키호테와 무지를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움에 남지만 나름 즐겁게 돌아다녔던 것 같다.

호스텔에 돌아온 후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이 믿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잠을 몰아내려고 했다. 이상하게도 숙소에 모여 한 명씩 소감을 말하는데,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마지막 날, 시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갔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 풀이 죽어있었다. 마지막 조식을 먹고 초밥을 만들러 갔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옷을 입으니 마치 초밥 장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평생 싫어할 것 같았던 초밥을 좋아하게 되었다. 생선이 얹어진 초밥이 비릴 것 같아 계란 초밥만 먹었는데, 나머지도 안 먹기는 조금 아쉬워서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먹었는데 꽤 맛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초밥 일곱 개를 다 먹었다. 한국 가서 또 초밥을 먹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분명 첫날에 회전 초밥집에서 우동만 두 그릇 먹은 애가 갑자기 초밥을 좋아하게 되니 다들 신기해했다.

마지막 일정인 쇼핑몰 구경하기. 처음에 쓱 훑었을 때 옷가게 밖에서 없어서 ‘뭐야...?’ 이랬지만 더 자세히 보니 귀엽고 아기자기 한 것들도 있었다. 부모님과 친구들 선물을 사고 오락실도 있길래 항상 하던 게임도 했다. 슬프게도 비 맞으면서 돌아다녀서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추웠다. (다음날 바로 목감기가 걸렸다.)

‘내가 왜 벌써 간샤이 국제 공항에 있는거야?!’ 현실을 부정해 봤자 소용없었다. 나에게 쥐어진 건 한국행 비행기 티켓이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어제 일본 도착한 것만 같았다.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특별한 순간이었다. (아이폰 갤러리는 사진을 특별한 순간이라고 하는데, 일상적인 사진만 찍었던 전에는 공감이 안됐지만 일본 탐방 기간 동안 찍은 사진은 정말 특별한 순간들이다.) 이번 탐방으로 문화, 사람들, 신념을 비롯하여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고, 그 순간들을 함께했던 친구, 언니, 오빠, 동생, 그리고 선생님들께 감사하고 서로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어준 것 같다. 5일 동안 한국에서의 염려, 걱정, 집착들을 벗어던지고 정말 행복하게, 환히 웃었던 것 같다. 가히 잊지 못할 찬란한 순간을 부족한 글로 딱딱하게 써냈지만,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미지의 곳에서 느낀 것들, 본 것들, 무엇 하나 빠짐없이 좋았다. 모두 잊고 싶지 않다.

다들 사후 모임 때 만나요. 그 때처럼 밝고 즐거운 모습으로! 함께 4박 5일을 보내주어서, 같이 진솔한 얘기를 해주어서, 잊지 못할 인연이 돼주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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