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넷 로고

메뉴버튼

1년 일정표

검색

전체메뉴

로그인 회원가입

미지소개

미지프로그램

국제활동정보

미지소식

시설안내/예약

한일 문화교류 참가후기, 김효진

혀 진 | 18.02.05 | 조회 2494

가-가+

무언가 잘못되었다 느낀 면접이 끝난 후 반포기하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을때.

점심을 먹고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며 확인한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상단에 쓰여있었다.

처음에는 동명이인인가 싶어 휴대폰을 확인하고,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았지만 틀림없는 내 이름 석자였다.

얼떨떨했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며 애써 마음을 잡고 있었는데.

안도감과 함께 밀려오는 몇가지의 걱정들, 지금 보면 다 부질없던 걱정거리였지만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점.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의 관계, 혹시모를 사고들이 머리를 애워싸며 이도저도 아닌 꼴로 만들어 버렸다.

세 차례의 사전 모임끝에 짐을 싸고 동대구 버스터미널로 향할때도 실감이 나지 않는듯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천공항 제 2여객터미널에 도착하고 조심하라는 어머니의 연락과 함께 서서히 현실에 눈을 떠게 됬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건 아니지만 해외로 가는 국제선은 처음인지라 불안하기도 했다. 허나 곧 밀려오는 잠과 향긋한 기내식에 눈이 멀어 빠지고 말았다. 대략 2시간을 날아 올라 도착한 일본의 첫 풍경은 이질적이면서도 정다웠다.

플랫폼에 보이는 일본어들, 그리고 그 사이에 적혀있던 한국어. 왜 외국에 나가면 애국심이 들끓는지 이해가 조금은 간듯 하다. 그렇게 반가울수도 없는데. 입국 검사를 마치고 짐을 찾은 후 전철이라 할까, 하여튼 지하철 비슷하게 생긴 것을 타고 이동하는데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일본의 자연은 사진으로 볼때도 감탄을 금치 못했으나 실제로 봤을때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푸른 하늘에 구름 한점없는 날씨.. 겨울임에도 불구, 습도가 높지 않고 딱 적당한 날씨에

상쾌한 바람까지, 긴장이 조금씩 풀린 터인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었다. 잠이 쏟아져 내렸기에.

우리의 가이드 쌤, 우짱과 함께 처음 향했던 행선지는 히코네 성이였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본 일본의 도시들은 미니어쳐 같이 작고 아담한 건물들과 차들이 이어져있는 만화속의 풍경이였다.

도착한 히코네 성을 올라가자 심하게 가파른 계단을 만나게 되었는데 최종보스 등장에 겁부터 났다.

원래 계단을 무서워하지만 17년 인생 살며 처음보는 무시무시한 것이였기에 발걸음을 떼기 조차 힘들었다.

봉을 두손으로 잡고 엉금엉금 기어가 올라간 위는 잠깐이라도 무서움을 잊게 해줄만큼 신기한 모습이였다.

수원화성과 비슷한 곳이였으나 일본의 성 답게 무언가 모르게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뽐내는 곳이였다.

시선을 돌려 하늘을 보다 우짱의 말씀에 고개를 돌리자 창문 하나, 밖에선 보이지 않고 안에서만 보이는 곳이라 설명을 듣자 역시 사무라이의 나라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뤘으면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내려가는 계단에 다시 한번 기겁을 치고 등산을 타러 왔는지 의심 해 볼만큼의 돌계단들은 식은땀이 나고 그때부터 피곤하기 시작했다.

그때 보인 비와호, 면적이 서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닌 듯이 호수가 아닌 바다 같이 넓은 모습에 말을 잃었다.

안개가 자욱하고 그 사이로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같은 진풍경에 들려오는 셔터 소리.

정신을 차리고 최대한 예쁜 필터를 골라 여러 장을 찍었다. 신경을 쓴 터인지 결과는 대성공.

몽환스럽기까지 한 사진에 흐뭇하게 웃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의 커튼을 걷고 바라본 밖, 체력을 단련하는 야구부 학생들과 농촌과 도시의 모습을 적절히 매치 시켜놓은 건물.

우리가 늘 보았던 만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하염없이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無의 세계로 빠져들즈음, 다음 행선지에 도착했다는 지도 선생님들의 말씀.

조선 인가도라는 옛 우리의 조선 통신사들이 직접 걸은 길이다. 그 시대의 최고 권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였지만 특별히 통신사들을 걷게 했다는 말에 나름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뜰 저녁이 다가온 시간. 우리가 묵을 호텔로 향하는 길은 천군만마라도 얻은 듯 든든하고 행복하였다. 일본하면 온천, 온천하면 일본! 역시나 도착한 호텔 안에는 온천이 있었다. 처음 입어보는 유카타에 당황했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유카타를 입은 채 온천안으로 풍덩.

하루의 피곤함을 다 풀어주는 따뜻한 물에 몸이 흐물흐물 하게 녹아 내렸다. 머리를 질끈 동여맨 채 샤워를 끝내고 다시 온천 속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숙소 안으로 들어오자 바로 뻗기 바빴다. 평소 자던 시간보다 2시간 더 일찍 잠에 들었으니, 몸이 많이 힘들었나보다.

다음날 일어나 조식을 간단히 먹고 향한 첫번째 행선지는 금각사라는 절이였다. 몇십년 전, 한 일본의 스님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각사의 모습에 질투가 난 나머지 불을 붙여 타버렸다가 다시 복원한 절이라 한다.

솔직히 절이 아름다웠으면 아름다웠지, 그 모습에 질투가 나 불을 붙였다는 건 일본이 금각사를 홍보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인줄 알았다. 허나 막상 눈에 들어온 금각사의 모습은 화려한 이목구비의 여인이였다.

눈을 한번 깜박이면 남자들이 심장을 부여잡았다던 중국의 미녀처럼 남녀노소 구분 할 것없이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 듯한 곳이였다. 섬세한 누각과 금빛으로 빛나는 찬란한 금각사. 취향에 딱 맞는 곳인지라 덧없이 행복했다.

금각사를 쭉 둘러보고 발걸음을 돌린 곳은 도시샤 대학,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신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놓인 곳이다.

헌화를 한 듯 놓여있던 꽃과 그의 작품을 담은 작은 수납함, 그의 시.

잠깐 묵념을 하고 그 시비를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남기게 된다. 어린 나이에 잃어버린 조국을 위해 먼 이국 땅에서.

그것도 일본의 땅에서 얼마나 많은 슬픔과 비참함에 차있었을 것인지, 차마 내가 생각 할 수 없을만큼의 고통이 느껴져 마음 한 쪽이 아렸다. 짧은 시간이였기에 더 여운이 남는 장소였다.

도시샤 대학의 캠퍼스는 한국의 캠퍼스 모습과 별 다르지 않았다. 한 손에 책을 들고 가는 모습, 연인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 수업이 있는지 다급한 모습..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청수사로 향했다. 푸른 물과 주황빛이 도는 탑들, 그리고 메인은 운세뽑기와 지혜, 사랑, 건강을 돕는 신비로운 물 먹기. 운세뽑기 중 연애운에서 다른 사람과의 인연이 맺어질거라 나와 몇번을 구겼는지 모른다.

원래는 지혜를 길러주는 물을 먹으려 했으나 아까 뽑은 운세를 뒤집으려 사랑의 물을 마셨다.

미신이라 하지만 찝찝한 건 싫다. 가벼운 에피소드를 뒤로 한채 고개를 돌린 곳은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귀무덤.

일본, 한국 양 국가의 적대 감정을 가지게 한 원인인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끄는 사무라이들이

자신들의 무력을 뽐내고 상을 더 많이 차지하고자 노약자 할 것 없이 잔혹하게 조선인들의 귀와 코를 베어 간 곳을 묻어놓은 무덤이다.

잡초로 가득한 무덤이 나와 같은 피를 가진 조선인이라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그리고 옆에서 선생님이 나지막하게 이것을 보아야 했던 조선 통신사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보라 하셨다.

말을 타고 초라한 무덤을 보아야 했던 통신사들, 같은 조선의 사람이였고 누군가는 나의 가족이며 이웃이였을 텐데.

어떻게 표현 하지 못할 비참함과 비통 가득한 눈물을 속으로 삼키려 노력했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양 외교를 위해.

통신사들의 숙소였던 니시혼간지는 정말 컸다. 우리나라의 절보다 큰 모습에 놀라며 황금 사자에 다시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절이 아닌 듯한 모습이였다.

밤엔 새롭게 이동한 유스호스텔에서 카드게임을 하고 야쯔바시라는 과자 만들기 체험을 한 후 여지없이 뻗었다.

그날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든 날이였다.

셋째 날, 아침을 먹고 발견한 것은 나라공원에 널리 있는 사슴들, .. 밥을 먹고, 처음 본 아이들이 사슴이였다.

토실토실하고 축 처진 꼬리가 어찌나 귀엽던지, 허나 발 밑에 떡하니 있는 조그마한 똥은 얼마나 악취가 심하던지.

머리에 주먹을 대고 인사를 하면 사슴도 같이 인사를 해준다기에 5마리앞에서 했지만 이건 뭐야 라는 눈빛을 보내곤 도망쳐 버린 사슴들,

동물들앞에서 재롱을 부린 듯 조금, 아주 조금 현타가 오긴 했다.

인생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만든 사건이랄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사슴 궁둥이를 마구 찍었다. 자고 있던 사슴도 밥을 먹고 있던 사슴도, 아기와 함께 놀던 사슴도.

사람으로 따지면 엄연한 성추행이였으나 사슴이니까.

뭐하냐며 놀리던 아이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쁜 사슴 궁둥이를 카카오톡 배사로 해놓았다.

푸른 하늘아래 찹쌀떡 같은 사슴의 궁. 둥. 이.

사실 셋째 날은 사슴 궁둥이가 너무 강렬했던지라 다른 것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한 것 같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조선 통신사 당시에 소동으로 온 김한중의 묘로 향했다.

먼 타국에서, 짧은 나이에 병으로 쓸쓸히 숨을 거뒀을 그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침울해졌다.

막 전쟁이 끝나고 발을 딛기만 해도 죽인다는 소문이 도는 일본을 누가 가고 싶었을까,

반강제로 끌려온 그가 타국에서 보낸 세월은 아마도 비통했을 것이다. 보고싶은 부모님과 가족들을 그리다 말이다.

그래도 양국의 화합과 교류를 위해 발걸음을 했을 그들의 용기에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오사카의 명물이자 가장 유명한 오사카 성으로 이동했다.

여러 애니에도 자주 등장하는 메인 요소인만큼 실제로 보는 모습은 어땠을까 기대감에 벅찼다.

말도 안되게 웅장한 오사카 성에는 여러 외국인들이 모여 서커스를 공연하고 사무라이 복장을 한 일본인들도 보였다.

오사카 성에 들어가자 터져나오는 감탄사.

화려한 천각과 웅장하며 기품있는 건물, 옛 사무라이들이 살았던 곳인만큼 그 풍채가 대단하였다.

그리고 오사카 성에서 생각하지 못한 하이라이트.

어제 게임에서 진 최 진 모군의 오겡끼데스까. 반 장난삼아 시켰는데 진짜로 할 줄 몰랐다.

한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인도인과 아랍인들까지 목격 하였다는데, 그의 용기에 큰메 박수를 보낸다.

오사카 성의 내부와 외부를 둘러본 후 내려오는 동안 저곳에서 한번이라도 생활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옛날에 기모노를 입고 사무라이들을 보는 건 어떨까, 생각만해도 두근거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

그리고 유명한 우메다 공중정원, 서울의 교보문고를 가는 듯한 정감가는 풍경과 천공의 섬 라퓨타에 들어간 것처럼

신기한 엘리베이터. 공중에 떠 있는지 착각이 들 정도로 투명하고 밖과 연결되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5시가 조금 넘을때 노을이 진다기에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밑에서 친구와 셀카를 찍다 황급히 올라갔다.

이승철의 서쪽하늘이 머리에서 맴돌정도로 장관인 모습.

저녁에 떨어지는 별똥별이 조금 더 일찍 떨어지면 저런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여러 장을 찍고 숙소로 향해 아이들과 정말 진솔한 내용을 얘기하다 잠에 골아 떨어졌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층침대에 커튼이 달려있는 건 혁신이다. 5분만에 꿈의 나라로 보내주거든.

넷째 날, 아마도 이 프로그램에 대다수 아이들이 참가한 목적이자 이 여행의 최종 보스가 아닐까.

조식을 먹고 오사카 국제교류센터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한국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에 역시나 하고 살짝 잠이 들었다. 금방 도착해 걷는데 손에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일본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하지.. 아무리 통역이 계신다 해도 내 의사를 전달하기에 충분할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이 생겼지만.

이내 만난 친구들은 정말 다정했다. 특히 메이언니와 모에, 문근영을 닮은 언니 모습에 한번놀라고 일본 특유의 콧소리를 섞은 귀여운 목소리에 아는 단어, 카와이를 연발하며 바디랭귀지로 말을 이어갔다.

한류가 대단하긴 한지 저마다 아이돌과 조금의 한국어를 얘기하는데 신기했다.

한창 말을 하다 주제가 나왔다. 세계에 100인 만이 존재한다면?

아시아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에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아프리카.

언어의 개수와 지구의 존재하는 나라들은 정말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 한국인은 100명중 1명이라는 사실, 사뭇 많던 중국과 일본인들에 비해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은 정말 극소수라한다. 정확힌 지구에 존재하는 언어중 잘 알지 못하는 언어라는 이야기다.

나이가 들고 기회가 생긴다면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여러 국가에 가 한국어를 전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 브레이킹을 간단히 마친 후 밥을 먹고 카카오톡 아이디를 주고 받으며 막 친해졌을때,

우리가 준비한 한국의 과자들을 먹으며 첫번째로 여러 게임을 하였는데 수건 돌리기에서 의외로 빠른 아이들의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 운동신경이 대단하는 것도.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비롯한 일본의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인물을 골라 한국에선 이렇게 느낀다- 라고 발표 한 정사. 그리고 나와 친구가 준비한 한국과 일본애니메이션, 한국어로 말을 하면 통역자분께서 일본 친구들에게 얘기를 해 주시는데 진짜 신기했다. 이래서 언어공부를 하면 삶이 달라진다는 구나.

조금의 조크랄까, 검정고무신을 소개할때 기철이의 아빠도 없는게 까불어. 라고 얘기할때 같은 한국인들은 알아듣는 눈치였으나 일본 사람들은 알아 듣지 못한 것 같아 문화의 차이인지, 아님 상황이 이해가 안가는건지.

조금 의아하였다.

발표가 끝나자 이어지는 한류의 소개, 실제로 랩을 하고 걸스힙합을 하는 모습이 정말 멋져보였다.

랩과 춤에는 거리가 먼지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 것 같다. 그리고 걱정했던 기모노, 아니 정확힌 유카타 입기.

기모노가 아닌 유카타가 맞는 표현이라니 새로운 사실을 배워가게 되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할머니 한분이 유카타를 진열해 놓으시고 고르라 하셔서 연보랏빛이 도는 유카타를 골랐다. 한눈에 딱 들어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옷이 정말 입기 힘들었다. 서양엔 코르셋이 있다면 일본엔 널빤지가 있다. 널빤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리본을 묶을때

널빤지 비슷한 걸 넣고 배에 힘을 준채 쫘악 땡기는데 숨이 안쉬어졌다. 허리가 반이 되버려 놀랐다.

이렇게 까지 할수있다니.. 옛날 일본인들은 이 유카타를 입고 활동을 했을 터인데 정말 대단해보였다.

옷을 입고 나와서 사미 언니랑 모에, 그리고 메이 언니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할아버지가 보여주시는 마슬을 보았는데 숨을 못쉬니 집중도 되지 않고 정말 힘들었다.

거기에 일본인의 전통 신발을 신고 있으니 발도 아프고, 아름다움을 위해 불편함을 감소했을 일본 여인들에게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숨을 못쉬겠던 유카타이지만 나름 마음에 들었던 옷이기에 벗는데 후련함과 동시에 아쉬움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였지만 정이 들어버린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도톤보리로 향하는 듯 싶었는데 그저 농담 삼아

모에에게 같이 가자 했더니 정말로 같이가게 되었다. 역시 현지인이라 그런지 길을 잘.. 찾았다.

어찌나 잘 찾던지, 맛있는 라면집과 스티커 사진을 찍고 도쿄핸즈에 들려 예쁜 펜들을 사는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발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다나올 지경이였다. 거의 이만 걸음넘게 걸었으니 발이 퉁퉁 부었다.

그래도 친구가 빌려준 휴족타임덕에 시원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마지막인 만큼 아쉬움이 가득하였고 방에 모여 각자 느낀 소감들을 얘기하는데 눈물이 또 나올뻔 했다.

너무 정이 들어버렸으니까, 아이들 한명한명을 알게 되고 새로운 사실들을 알때마다 얼마나 재밌던지,

그리고 10대이기에, 또래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자리인 것 같아 더 아쉬웠다.

4일이 너무 짧았고 일주일은 더 다니고 싶었다.

씻고 잠에 드는데 마지막이라는게 안 믿기고 드디어 집에 간다는 생각에 뒤숭숭한 심정으로 잠을 청했다.

너무 피곤해서 세수도 못하고 바로 생얼로 나가 밥을 먹고 준비를 한 뒤 초밥 만들기를 하러 갔다.

역시나 등장하는 우동국물이 얼마나 좋던지, 후루룩 먹고 직접 초밥을 만든다는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양 조절을 잘 못해 참치 깁밥처럼 되버려 웃픈 날이였다.

쇼핑을 좀 하다 간사이 국제 공항에 도착해 도쿄 바나나를 사갈지 초콜릿을 사갈지 고민하다 도쿄 바나나를 선택해 비행기를 기다리며 아이들과 조금씩 작별 인사를 나눴다.

비행기에 탑승해 짐을 옮기고 기내식을 먹고 잠깐 잠에 들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흔들렸다 기에 깜짝 놀라 일어나니 그저 뻥이였다. 허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한대 쥐박고 싶었으나 이제 작별하는 친구인데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허허 넘겨버렸다. 드디어 도착한 인천 국제 공항, 한국, 내 집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지만,

정든 친구들과 선생님들과의 작별이 못내 아쉬워 자꾸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그래도 수료식이 남아 있어 불행 중 다행인 것같다.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이 이 미지센터에서 갈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이자 축복인 거 같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다녀 온 것으로도 만족하는데 여러 가지를 알게 되고 많은 것을 얻고 갈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이런 체험을 한 번 더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이런 기회들이 한번씩 보인다면 다시 재신청을 할 생각이다.

다들 수료식때 보고 몸 건강해요!

정말 인생에 있어 뜻깊은 시간을 가지게 해준 세 선생님과 마지막 중학교 겨울방학때 잊을 수 없는 매 순간을 보내게 해준 친구들! 진짜진짜 보고 싶을 거고 그리울 거에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참가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