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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한중)청소년문화교류 참가자 후기(1) by 포로리

미지 구지연 | 19.06.07 | 조회 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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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동아시아(한중)청소년문화교류

  

황혜민(포로리)

 

 

Day-1 2018.07.26.

인천국제공항-동악묘-유리창-스차하이-난뤄구샹

 

0) 점심- 중국 현지식

본격적인 탐방에 앞서 중국 현지 식당을 방문했다. 이번 탐방을 하는 내내 중국 현지 음식을 많이 접하게 될 것인데 입맛에 맞지 않아 모두 맛있게 먹지는 못하더라도 시도는 해보자는 생각으로 점심으로 나온 음식들을 모두 먹어보았다. 개중에는 향신료의 향이 세지 않아 맛있게 먹은 음식도 있었지만, ‘마라라는 향신료가 들어갔다고 생각되는 음식은 먹기가 많이 힘들었다. 점심을 먹으며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옛날 연암은 다른 조선인들에 비해 상대의 문화를 존중하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자 했던 인물이다. 조선의 사대부로써 명을 멸망시킨 청을 배척하지 않고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한다고 주장했던 연암은 시대를 뛰어넘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 동악묘

중국에 도착한 후 가장 처음 방문한 곳이 동악묘이다. 동악묘는 북경에서도 가장 중요한 도교 사원으로, 오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산인 태산의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원이다. 연암 일행을 비롯한 조선 사신 일행은 성안으로 들어가기 전 동악묘에 잠시 들려 전통적으로 옷을 갈아입고 북경성 입성을 준비했다고 한다. 연암은 이곳을 보고 건물의 웅장하고 화려함은 여태까지 보던 중 처음이다.’ 라며 감탄을 했다. 현재 이곳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파손되어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않다. 연암이 보았던 동악묘와 내가 탐방을 갔을 때 동악묘의 모습은 많이 다르겠지만 그 옛날 조선의 사신들이 방문했던 곳이라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동악묘는 방문객이 별로 없이 한산한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양 옆에 붉은색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구정이나 보름이 되면 방문객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아마 그들이 붉은색의 것을 걸어놓으며 행복을 기원하나보다. 동악묘 안으로 더 들어가다 보면 인간의 다양한 소망을 들어주거나 부정한 행위를 한 자를 심판하는 76 가지의 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일일이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양에서부터 북경까지 고된 여정 끝에 드디어 북경에 도착한 사신들이 처음 들린 곳인 만큼 그들에게 동악묘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조선의 사신들이 북경에서 앞으로의 여정을 기대하며 설레기도, 긴장되기도 했을 동악묘는 나에게도 같은 감정을 느끼게 했다. 북경에서 처음 탐방한 곳이었던 만큼 앞으로의 탐방이 기대되어 설레기도 긴장되기도 한 곳이었다.

 

2) 유리창

유리창은 본래 명나라 초기에 자금성을 건축하면서 유약을 바른 기와를(유리기와)를 제조하는 공장이 생기면서 유리창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자금성이 완공되고 공장이 문을 닫자 그곳에 서적상들이 들어서면서 문화의 거리로 바뀌게 되었다. 18세기 청의 건륭제 대에 이르러 유리창은 전성기를 맞는다. 이에 따라 학자, 예술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학예의 거리가 되었다. 연암은 이곳을 국내외의 진귀한 물건들이 모여드는 곳이다라고 묘사했다. 유리창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홍대용일 것이다. 그가 세상의 벗인 청나라 선비 엄성을 만난 곳이기 때문이다. 유리창은 조선의 사신들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중국의 서적을 가져온다는 것이 당시 조선에서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을 접할 수 있었던 이곳은 오늘날 문방구 (붓과 벼루), 고미술품 등을 파는 화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만 예전만큼의 영화를 누리지는 못한다.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곳으로 변한 이곳은 문화대혁명 이후 번체 한자로 쓰여있는 고서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짐에 따라 한적한 곳으로 변했다고 한다.

 

3) 스차하이

스차하이는 예로부터 귀족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곳으로 지금도 중국 전통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거리와 낭만적인 호수가 어우러져 그려내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 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관광지이다. 우리 일행은 스차하이에서 인력거를 타고 풍경을 즐겼는데 무척 더운 날씨여서 괜히 인력거를 끌어주시는 분께 죄송했다. 인력거를 타니 바람이 불었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스차하이의 경치를 즐겼다. 그러다 인력거를 끌어주시는 분을 보니 땀을 많이 흘리시기에 유리창에서 구입한 부채를 부쳐드렸다. 이것에 힘이 나셨는지 다른 인력거를 다 제치고 거의 첫 번째로 종점에 도착했다.

 

4) 난뤄구샹

난뤄구샹은 우리나라의 홍대와 같은 곳이라고 했다. 넓지 않은 길 양옆으로 끝도 보이지 않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Tea House들과 중국의 엽서를 파는 상점들, 물병을 파는 곳,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 등 다양한 종류의 상점들이 있었다. 사실 나는 난뤄구샹이 물건을 파는 곳인지 모르고 돈을 조금만 챙겨 갔었는데 그곳에 도착하고 많이 후회했다. 각각의 상점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고유의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거리가 중국의 옛 가옥 형태를 하고 어 특유의 예스럽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났다. 나는 베이징의 관광지 모습들이 담긴 엽서 세트를 구입했고, 엄마가 잠을 잘 못 무시기에 잠이 잘 온다는 허니티를 샀다. 거리를 끝까지 다 다녀오지 못하고 이정도면 많이 왔다.’하는 생각이 들 때 쯤 다시 모이기로 한 장소로 돌아갔다. 밖에서 돌아다녀서 그런지 얼굴이 많이 익었고, 기다리면서 한국에서도 한 번도 물리지 않았던 모기에 많이 물렸다.

 

5) 저녁- 한식당

중국에서 한국음식을 먹게 될 줄이야. 밖에서 하는 활동이 많았기 때문인지 배가 많이 고팠었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한식은 한국에 돌아와서 많이 먹을 수 있기에 중국 현지 음식을 더 먹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 숙소

숙소에 돌아와서 우리 문화교류 팀은 한국에서 못 다한 문화교류 준비를 하였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많이 힘들었지만 다같이 협심하여 문화교류 준비를 잘 끝낼 수 있었다.

 

 

Day-2 2018.07.27.

천안문-자금성-경산공원-옹화궁-공묘-국자감

 

1) 천안문

더운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안문에는 사람이 많았다. 천안문광장 부근에는 인민대회당, 국가 박물관, 모택동주석기념관, 인민영웅기념비 등 국가적 상징물들이 들어서 있어 오늘날 중국을 상징하는 곳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많이 천안문을 찾는 것 같다. 우리가 단체티를 입지 않았더라면 아마 일행을 잃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천안문까지 가는 도중에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로를 건널 때 횡단보도를 이용하거나 주로 도로 위에 지어진 육교를 이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중국의 천안문 앞에는 (이곳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하에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길이 있었다. 나름 넓은 편이었으며 그곳을 지키는 군인도 있었는데 정자세로 계속 서있는 것이 힘들 것 같았다. 지하도에서 나와 천안문까지 가는 동안 정말 긴 줄을 발견하고 놀랐었다. 저 줄을 기다려 자금성에 들어가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 줄은 마오쩌둥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모택동주석기념관에 가기 위한 줄이라고 했다. 저 긴 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이 궁금하기도 했다. 저 멀리 보이는 천안문을 배경으로 우리 일행은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우리는 천안문을 통과하여 자금성으로 들어갔다.

 

2) 자금성

우리는 천안문을 통과하여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을 지나 드디어 입성했다. 건물의 벽은 전부 붉은색이었는데 몇몇의 인부가 그곳을 다시 붉게 페인트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의 것과 색이 조금 달라 벽의 색이 모두 같은 붉은색이 아니어서 인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 전의 것과 색이 다릅니다.’하고 말이다. 오늘날 고궁박물원이라고도 불리는 자금성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황금빛 기와가 멋스럽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 2시간 반 정도를 더 걸어야한다고 하니 막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태화전은 자금성 내에서 가장 큰 전당으로 명·청대의 역대 황제들이 황제즉위식, 혼례 등 황실의 행사를 진행하는 곳이었으며 황제가 문무관원의 아침문안을 받고 각종 연회를 개최한 곳이다. 일전에 연암에 관한 첫 번째 주제 강연을 들었을 때 강연을 해주신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영화 마지막 황제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이곳, 태화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암은 그의 저서인 [열하일기]에서 태화전을 아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내가 그 당시 조선의 사신단으로 간 연암이라면 태화전을 눈으로만 보기에 바빴을 텐데 연암은 세세한 것까지 관찰하며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관찰력에 놀랐다. 태화전 앞 광장의 바닥은 벽돌로 쌓여있는데 이는 바닥 밑으로 적이 침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아울러 광장이 매우 넓음에도 불구하고 자객의 은신처를 없애기 위해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자금성을 탐방한 날은 날씨가 흐리다 결국 비가 와서 상관이 없었지만 이 날과 달리 햇살이 쨍쨍한 날에 자금성을 탐방하는 관광객들은 그늘이 없어 많이 힘들 것 같았다. 자금성 내에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를 파는 작은 상점들이 있었는데 겨울은 몰라도 여름에는 장사가 정말 잘 될 것 같았다.

 

3) 경산공원

자금성을 나오고 나면 꼭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경산공원이다. 경산공원은 명나라 건국 후 영락제가 자금성을 축조하면서 오늘날의 중남해와 북해, 자금성의 해자에서 파낸 흙으로 산을 만든 것이다. 경산의 꼭대기에는 건륭제 시대에 만들어진 만춘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자금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천안문부터 자금성까지 많이 걸었기에 경산공원의 꼭대기까지 오르는데 많이 힘들었다. 많은 계단을 오르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곳에 다시 올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에 힘들어도 참고 올라갔던 것 같다. 정상에 올라가서 본 자금성의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장관이었다. 장시간의 행군으로 지쳤던 몸이 한순간에 회복되는 것 같았다. 포기하지 않고 올라온 내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내려가는 길은 전에 비가 와서 그런지 많이 미끄러웠다. 나도 한번 미끄러진 적이 있는데 조심하고 있던 탓에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계단에 내려서는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하는 명사종 순국처가 있었다. ‘열하일기의 첫 번째 책은 도강록으로 압록강을 건너며 본격적인 연행의 시작을 기록한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의종 열황제가 나라를 위하여 죽고 명이 망한 지 벌써 130여 년이 경과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명나라 멸망 후에도 조선에서는 청나라 연호를 쓰는 걸 꺼려하며 여전히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인 숭정을 쓰고 있던 것이다. 그 의종이 자결했던 곳, 연암은 바로 이곳을 찾으려 했다. 지금은 경산 동쪽 등산로 초입에 홰나무 한 그루와 비석 두 개가 순국 장소로 조성되어있다. 그 옛날 박지원이 가고자 했던 곳. 내가 직접 가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4) 옹화궁

옹화궁은 북경 최대의 티베트 불교 사원으로 건륭제가 출생한 곳이다. 옹화궁에 들어가면 길지 않은 산책로가 있고 향을 피우는 곳에 다다르게 된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향은 입장권 가격에 포함이 되어있어 1인당 1세트씩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옹화궁을 돌아다니며 향을 피우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칠 수 있었는데 나도 향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터라 향을 피우지 못한 것이 아쉽다. 향은 한 번에 3개씩 피우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는 만큼 향냄새가 많이 났는데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점점 갈수록 어지러웠다. 옹화궁은 향-불상--불상이 반복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불상의 크기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커진다. 그 중 만복각에 있는 미를불은 당시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가 건륭제에게 선물한 것으로 26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목 불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불상을 봤을 때는 ..크다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는데 위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되니 뜻깊은 경험을 한 것 같아 더 기억에 남는다.

 

5) 공묘·국자감

북경에 도착한 조선의 선비들이 꼭 가봐야 할 곳은 공묘와 국자감이었다. 연암은 중국에서 가장 의미있고 규모가 크다는 연경, 열하에 있는 공묘를 모두 방문하였다. 열하일기에서 공자를 배알하고 물러나와 글을 쓰다라는 의미의 알성퇴술에서 공묘와 국자감에 대한 다섯 편의 글을 남겼다. 공묘에는 700살이 넘은 측백나무가 있는데 간신을 알려주는 나무라고 한다. 혹여나 내가 지나갈 때 떨어질까 조금 걱정하며 지나갔던 것 같다. 공묘에서 대성예악이라는 유교관련 공연을 보았다. 공연을 보는 당시에는 무슨 내용인지 몰라 공연에 대한 집중도가 조금 떨어졌던 것 같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유생들이 나와 시경을 읽고 노래하는 내용으로 당시 유생들의 모습과 생활을 상상하게 도와주는 공연이라고 한다. 미리 알고 봤으면 공연을 더 집중해서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쉽다. 대성전의 서쪽 모퉁이에는 십삼경각석이 줄지어 서 있는데 더운 날씨덕에 공묘에서 가장 시원했던 이곳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물론 13종의 경전 전문이 새겨져 있는 돌비석도 흥미로웠다. 국자감은 원,,3대에 걸친 국가 관리 교육의 최고 행정기구이자 최고의 학부였다. 국자감의 태학문에는 중국의 대문에 있어야할 문지방이 없는데 이는 국자감에 많은 인재가 들어오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고 하니 그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저녁은 팀별 자유식이었다. 우리 팀은 마라탕을 먹었다. 원하는 재료를 그릇에 담아서 주면 끓여서 주는 방식이었다. 원래 향신료를 잘 먹지 못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향이 세지 않아 정말 맛있었고 중독성도 있어 계속 먹고 싶었다. 마라탕을 먹고 과일가게에 갔다. 과일가게에서 망고스틴, 망고, 두리안을 사 먹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먹지 못하는 열대 과일들을 중국에서 먹게 되니 신기했다. 중국은 땅이 커서 여러 기후가 나타나기 때문에 중국 자체적으로 열대 과일을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라고 한다. 과일을 먹고 근처 편의점을 들렀고 이런저런 것을 산 다음에 파리바게트에 갔다. 중국에도 파리바게트가 있다니 신기했다. 원하는 중국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Day-3 2018.07.28.

문화교류-승덕(열하)로 이동

 

카페에서 테이블 별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처음 본 것이고 게다가 중국 친구라 어떻게 대화해야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기본적으로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소통이 되지 않을 때는 파파고 등 번역기를 이용하여 대화를 하였다. 우리 테이블에서 같이 대화한 친구는 영어를 잘 하지 못했고 한국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막막했지만 중국 연예인 이야기 등 중국 친구가 잘 알만한 이야기를 하니 대화를 잘 주고받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센터에 들어가서는 아이스브레이킹을 통해 어색했던 분위기를 깼다. 모두가 술래의 행동을 따라하고 앞에 나와 앉아있는 사람은 행동을 따라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술래를 알아맞히는 활동을 하였다. 테이프를 5등분 하여 중국어로 가위바위보를 외치고 진 사람에게 정해진 개수만큼 얼굴에 테이프를 붙이고 최종적으로 모든 테이프를 얼굴에 붙이고 있는 사람은 교류활동이 끝날 때까지 얼굴에 붙이고 있는 활동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 나라, 한국과 중국, 세계가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중국, 한국 청소년들이 3개의 조로 나뉘어 각자 생각한 것을 한국어, 중국어(한자), 영어 등으로 자유롭게 적은 후 각자 생각한 것을 이야기 해보았다. 아이스브레이킹이 끝나고 한국 청소년들의 작은 공연이 있었다. 오상준(비디)붕붕_김하온랩과 양효정(모정), 구근원 오빠(소스)우연히 봄_유주, 로꼬의 공연이 있었다. 중국 청소년들이 열렬히 환호해주어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작은 공연 이후 본격적인 문화교류 시간을 가졌다. ‘K-Beauty’, ‘전통놀이’, ‘한류이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간단한 발표 (소개)를 한 후 각각의 팀들이 준비한 부스를 중국 청소년들이 체험해 보는 방식으로 문화교류를 진행하였다. 먼저 ‘K-Beauty’ 팀은 한국의 청소년들이 체육대회 때 주로 하는 메이크업 3종류의 사진을 준비하여 중국 청소년들이 원하는 메이크업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일회용 타투스티커를 이용해 타투를 체험해 보는 것도 준비하였고, 얼굴 전체가 아닌 부분에 할 수 있는 팩도 준비하여 중국 청소년들이 체험해 보도록 했다. 중국 청소년들이 메이크업을 받고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니 괜히 내가 기분이 좋았다. ‘전통놀이팀은 발표 때 각각의 전통놀이를 하는 방법을 간단히 소개한 후 직접 전통놀이를 즐겨보는 부스를 준비했다. ‘제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공기놀이등의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한류팀에서는 한국 아이돌 이상형 월드컵, 한국의 드라마· 노래· 예능을 주제로한 퀴즈, 카드 뒤집기를 준비하였다. 이상형 월드컵의 경우 자신이 마음에 들어한 연예인의 사진을 선물해 주었고, 카드뒤집기의 경우 그 난이도에 따라 제한시간을 달리하여 일정 시간안에 모두 같은 쌍의 카드를 맞추면 한국 캐릭터 사탕, 젤리등을 선물로 주었다. 한류에 관한 퀴즈 역시 맞춘 개수에 따라 선물을 주었다. 한국 청소년뿐만 아니라 중국의 청소년들도 간단한 문화교류를 준비하였다. 중국의 명절과 먹거리에 관한 것이었다. 중국의 명절과 먹거리에 관해 평소에 알던 것이 많지는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많이 안 것 같아 좋았다. 문화교류를 준비하면서 의사소통을 가장 걱정을 했었다. 통역을 도와주시는 선생님께서 모든 것을 다 도와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청소년들이 다들 영어를 잘 해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예상했던 인원보다는 적은 인원으로 한중 청소년 문화교류를 진행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즐거웠던 것 같다. 각각의 친구들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다.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아 뿌듯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 양국의 청소년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날 저녁은 한국인들에게 익히 알려진 훠거를 먹었다. 인사 담당 직원도 따로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미리 예약을 해놓으셔서 바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홍탕과 백탕을 모두 먹어봤는데 홍탕이 너무 매워서 백탕 위주로 먹었다. 그러다 매운 것이 좀 사라지면 다시 홍탕을 도전해보았는데 정말 매웠다. 저녁을 다 먹고 알게 된 사실인데 기다리면서 네일아트나 옥수수 튀긴 것, 해바라기씨 등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알았으면 나올 때 해바라기씨 하나 들고 올 걸 하고 조금 후회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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